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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카서스는 흑해와 카스피해 사이, 유럽과 아시아의 경계 지역(면적 약 440,000㎢, 한반도의 약 2.4배)입니다. 기원전 3000년경부터 인류 문명이 발달했으며, 고대 실크로드의 핵심 교역로로 동·서 문명 교류의 십자로였습니다. 아카이메네스 페르시아(기원전 550년), 알렉산드로스 대왕, 로마 제국, 비잔틴 제국, 몽골, 오스만 투르크, 러시아 제국이 차례로 지배권을 두고 각축한 전략적 요충지입니다.
🏛️ 역사적 배경아르메니아가 기독교 국교를 선포한 301년, 한반도는 삼국시대(고구려·백제·신라)였습니다. 불교가 공식 전파된 것은 고구려 372년, 백제 384년입니다. 코카서스 기독교 문명과 한반도 불교 문명이 거의 같은 시기에 국가 종교로 자리잡았습니다. 또한 소련에 의해 70년간 종교 탄압을 받은 코카서스 교회의 경험은, 일제강점기(1910-1945) 35년간 기독교 탄압을 받은 한국 교회의 역사와 공명합니다.
아르메니아는 301년(일부 학자는 314년설 제기) 트리다테스 3세(Tiridates III)가 세례를 받고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하여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가 되었습니다. 이 사건의 1차 사료는 5세기 아가탄겔로스(Agathangelos)의 『아르메니아인의 역사(History of the Armenians)』입니다. 조지아(이베리아 왕국)는 337년경 성녀 니노의 선교로 미리안 3세가 기독교를 수용했습니다. 두 국가 모두 로마 제국의 밀라노 칙령(313년)보다 이르거나 비슷한 시기에 국가 차원에서 기독교를 공인한 것으로, 세계 기독교사에서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합니다.
코카서스 교회 건축의 핵심은 십자형 중앙 돔(centralized cross-dome) 양식입니다. 아르메니아의 에치미아진 양식(4후진 십자형)과 조지아의 즈바리 양식(테트라콘크)은 5-7세기에 이미 완성되었으며, UNESCO는 이 양식들이 비잔틴 및 유럽 중세 교회 건축의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합니다. 특히 돔을 기둥이 아닌 벽체 위에 올리는 혁신적 구조는 이후 유럽 로마네스크 건축에까지 영향을 주었다는 학설이 있습니다.
405년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가 아르메니아 문자 36자를 창제했습니다(이후 12-13세기에 2자가 추가되어 현재는 38자). 최초 번역된 문장은 잠언 1:2 "지혜와 훈계를 알게 하며"였습니다. 이 문자 창제는 성경 번역을 위한 것으로, 원어가 소실된 고대 문헌들의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이 학술적으로 매우 중요합니다. 조지아 문자 역시 비슷한 시기에 정비되어, 두 민족 모두 '신앙을 지키기 위해 문자를 만든' 독특한 역사를 공유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는 아브라함처럼 익숙한 곳을 떠납니다. 우리가 보고 듣고 경험하는 모든 것 속에서 주님의 음성을 듣게 하시고, 신앙의 선조들이 지킨 복음 위에 우리 믿음을 더 굳건히 세우는 순례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


서기 301년은 로마 황제 디오클레티아누스(재위 284-305)의 기독교 대박해가 절정에 달하던 시기입니다. 로마 제국 전역에서 기독교인들이 처형당하는 동안, 작은 왕국 아르메니아가 세계 최초로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했습니다. 이는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밀라노 칙령(313년)보다 최소 12년, 로마 제국 기독교 국교화(380년 테오도시우스 칙령)보다는 약 79년 앞선 역사적 사건입니다.
🏛️ 역사적 배경'외아들이 내려오신 곳(Etchmiadzin)'이라는 뜻. 성 그레고리우스(Gregory the Illuminator, 240-325년경)가 티리다테스 3세 왕에게 복음을 전하고 301년 건립했습니다. 현재 건물은 4-7세기 여러 차례 확장·재건된 것입니다. 2018-2024년 6년간 대규모 복원 공사를 마치고 재개관했습니다.
세계 최초 기독교 국교화의 현장. 그레고리우스는 13년 지하 감옥 생활 후 왕을 회심시켜 아르메니아 전체를 복음화했습니다. 아르메니아 사도 교회는 현재 전 세계 약 900만 명의 신자를 가진 독자적인 기독교 전통을 유지합니다.
에치미아진 대성당은 301-303년에 건립된 것으로 전해지며,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국가 건립 성당'으로 평가됩니다. 다만 학술적으로는 예루살렘 성묘교회(326년)·로마 산 조반니 인 라테라노 대성당(324년)과의 선후 논쟁이 있으나, 에치미아진은 국가가 공식적으로 기독교를 채택한 후 건설한 최초의 성당이라는 점에서 구별됩니다. 483년 바한 마미코니안(Vahan Mamikonian)에 의해 대규모 재건되었고, 현재의 십자형 평면은 이때 확립되었습니다.
UNESCO는 에치미아진을 "아르메니아 교회 건축의 발전과 진화를 증언하는 탁월한 사례"로 평가합니다(WHC No.1011). 4후진(四後陣) 십자형 평면에 중앙 돔을 얹는 '에치미아진 양식'은 5-7세기 아르메니아 전역에 확산되었고, 건축사학자 크리스티나 마란치(C. Maranci)는 이 양식이 비잔틴·유럽 중세 교회 건축에 영향을 준 원형 중 하나라고 분석합니다.
다년간의 대규모 복원 사업을 통해 약 2,600㎡에 달하는 내부 프레스코화가 복원되었습니다. 이 벽화의 상당수는 호브나타냔(Hovnatanyan) 가문 3대에 걸쳐 17-19세기에 제작된 것입니다. 복원 과정에서 지진 대비 구조보강도 동시에 실시되었으며, 2024년 9월 29일 총대주교 카레킨 2세 주재 재축성식과 함께 재개방되었습니다.
세계 최초로 주님의 이름을 국가의 이름으로 고백한 이 땅에 서서 기도합니다. 1,700년의 신앙을 지켜온 이 교회처럼, 우리 교회도 어떤 시대의 풍파 속에서도 복음의 자리를 지키는 공동체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현지 가이드와 협의하여 방문을 검토해 주세요. 예레반 시내에 위치하며 에치미아진 당일 방문이 가능합니다.
1915–1923년 오스만 제국에 의해 자행된 아르메니아 대학살은 약 100–150만 명이 희생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미국(2021년), 프랑스, 독일 등 30여 개국이 제노사이드로 공식 인정했으나 터키는 반대 입장입니다.
하나님, 이 땅에서 이유 없이 희생된 수많은 생명들을 기억합니다. 그들의 고통이 헛되지 않도록, 이 역사가 용서와 화해로 이어지도록 도와주옵소서. 오늘도 세계 곳곳에서 박해받는 자들을 위해 우리가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


아라랏산(5,165m)은 구약성경에서 '방주가 머문 산'(창 8:4)으로, 아르메니아 민족의 영적·민족적 상징입니다. 그러나 오늘날 이 산은 터키 영토에 속해 있습니다. 1차 세계대전(1914-18) 말기 오스만 제국이 아르메니아인 대학살(Armenian Genocide, 1915-1923년, 약 100-150만 명 사망)을 자행하면서 아나톨리아의 아르메니아인들을 몰아냈고, 1921년 카르스 조약으로 아라랏 지역이 터키에 귀속되었습니다.
'깊은 지하감옥'이라는 뜻. 성 그레고리우스가 왕의 명으로 투옥되어 약 13년간(288-301년경) 갇혔던 현장. 왕의 누이 흐소로비두흐트(Khosrovidukht)가 꿈의 계시를 받고 석방, 그레고리우스가 왕의 병을 고쳐 왕이 개종했습니다. 현재 교회는 7세기 초 건립, 17세기 재건.
🇰🇷 그 당시 대한민국그레고리우스의 13년 감옥 생활은 단순한 박해가 아니라, 복음이 왕궁으로 들어가는 하나님의 섭리적 통로였습니다. 요셉의 감옥(창 39-40장), 바울의 투옥(빌 1:12-14)과 동일한 패턴입니다.
5세기 저술된 아가탄겔로스(Agathangelos)의 『아르메니아인의 역사』는 그레고리우스 루사보리치(계몽자 그레고리)의 이야기를 전하는 가장 중요한 1차 사료입니다. 그레고리우스는 파르티아 귀족 출신으로, 부친이 아르메니아 왕 코스로에스 2세를 암살한 죄로 로마에서 양육되어 기독교인이 되었습니다. 아르메니아 왕 트리다테스 3세의 궁정에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하다 투옥되었고, 전승에 따르면 13년간 지하 감옥에 갇혔습니다.
코비랍(Khor Virap, '깊은 지하감옥')의 감옥은 성 게보르그(St. Gevorg) 예배당 제단 오른쪽에 위치합니다. 깊이 약 6m, 직경 약 4.5m의 원형 구덩이로, 좁은 사다리를 통해 내려갑니다. 전승에 따르면 한 과부가 매일 빵을 떨어뜨려 그레고리우스를 먹였다고 하며, 그 구멍이 현재도 남아 있습니다. 642년 네르세스 3세가 최초 예배당을 건립했고, 현재의 성 아스트바차친(Astvatsatsin, 성모) 교회는 1662년에 재건된 것입니다.
코비랍 인근에 고대 아르메니아 수도 아르타샤트(Artashat)가 있습니다. 기원전 176년 아르탁시아스 1세가 건설했으며, 로마 역사가들은 카르타고의 한니발이 이 도시의 입지를 조언했다는 전승을 기록합니다. 1970년대 발굴에서 성채·도로망·3,000점 이상의 화살촉이 출토되어 고대 아르메니아 왕국의 군사·교역 중심지였음이 확인되었습니다.
아라랏산을 바라봅니다. 저 산은 아르메니아 땅에 있지 않지만, 하나님의 섭리는 국경을 초월합니다. 그레고리우스가 13년 어둠 속에서도 믿음을 잃지 않았듯, 우리도 어떤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향한 소망을 잃지 않게 하옵소서.
— 아멘


12-13세기는 아르메니아 바그라투니(Bagratuni) 왕조의 황금기이자, 동시에 십자군 원정(1095-1291년)과 몽골 제국 팽창(13세기)의 격변기였습니다. 1215년 주 성당이 완공되던 해, 유럽에서는 제4차 십자군이 콘스탄티노플을 약탈했고(1204년), 칭기즈칸의 몽골군이 아시아를 석권하고 있었습니다. 이 혼란기에 아르메니아 귀족들은 오히려 게그하드 같은 문화·신앙 유산 건립에 투자했습니다.
🏛️ 역사적 배경'창(Geghard)'이라는 뜻 — 예수님을 찌른 론기누스의 창(요 19:34)이 보관되었기 때문. 원래 이름은 '동굴 수도원(Ayrivank)'. 4세기 성 그레고리우스가 신성한 샘(아자트 강 지류) 곁 동굴에 창건. 주 성당 1215년 완공. 암벽을 직접 파내어 만든 동굴 교회들은 13세기 프로샨(Proshian) 왕족의 후원으로 증축됨.
수도원에는 scriptorium(필사실), 도서관, 음악 학원이 운영되었습니다. 12-13세기 아르메니아 문화 황금기를 주도한 지식 공동체였으며, 1190년 이곳에서 필사된 복음서가 현존합니다. 중세 수도원은 단순한 예배 공간이 아니라 문명의 보존소였습니다.
게그하드 수도원은 2000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WHC No.960, 기준 ii). UNESCO는 "중세 아르메니아 수도원 건축과 장식 예술의 정점을 보여주며, 이후 지역 발전에 깊은 영향을 미쳤다"고 평가합니다. 건축 연대기는 4세기 동굴 수도원 '아이리반크(Ayrivank, 동굴의 수도원)' → 923년 아랍군 파괴 → 1215년 자카리안(Zakarian) 형제의 후원으로 현재의 본당(카토기게, Katoghike) 건립 → 1240년대 프로시안(Proshian) 가문이 암벽 교회와 가족 묘소를 확장한 순서입니다.
수도원 이름 '게그하드(Geghard)'는 아르메니아어로 '창(槍)'을 뜻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사도 다대오(Thaddeus)가 예수님의 옆구리를 찌른 롱기누스의 창을 이곳에 가져왔고, 약 500년간 보관되었습니다. 1760년대에 에치미아진 대성당으로 이관되어 현재 보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성창은 빈 호프부르크의 성창, 바티칸의 성창과 함께 세계 3대 성창 유물로 꼽힙니다.
게그하드 곳곳에 새겨진 하치카르는 아르메니아 고유의 석조 십자가 예술입니다. 평균 높이 약 1.5m, 아르메니아 전역에 50,000점 이상이 현존하며, 동일한 문양은 단 하나도 없습니다. 2010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어 "아르메니아 문화 정체성의 가장 가시적인 상징"으로 인정받았습니다.
이 돌 하나하나가 당신을 향한 헌신의 표현입니다. 암벽을 파서 드린 공간처럼, 우리의 마음 가장 단단한 곳을 주님께 드립니다. 오늘 이 자리에서 예배가 울리듯, 우리 삶 전체가 주님을 향한 울림이 되게 하옵소서.
— 아멘


서기 77년은 로마 황제 베스파시아누스(재위 69-79년) 재위 시기입니다. 바로 전해인 서기 70년, 로마 티투스 장군이 예루살렘을 파괴하고 성전을 불태웠습니다(요세푸스 '유대 전쟁사'). 아르메니아 티리다테스 1세 왕은 네로 황제(54-68년)로부터 왕위를 인정받는 대가로 로마의 영향력을 받아들이며, 로마 건축 양식의 이 신전을 태양신 미흐르(Mihr)에게 헌정했습니다.
🏛️ 역사적 배경아르메니아에 유일하게 남은 그리스-로마 양식 신전. 이오니아식 기둥 24개, 정교한 조각 장식이 특징. 17세기 대지진으로 완전히 붕괴 → 소련 시대인 1975년 발굴된 원석으로 복원. 인근의 현무암 주상절리(Symphony of Stones)는 약 5천만 년 전 화산 용암이 냉각되며 형성된 자연 경관.
🇰🇷 그 당시 대한민국사도행전 17:22-23에서 바울이 아테네에서 '알지 못하는 신에게'라는 제단을 발견한 것처럼, 가르니 신전은 참 하나님을 아직 모르던 인류의 보편적 종교적 갈망을 보여줍니다. 기독교화 이후 대부분의 이교 신전은 파괴되었으나, 왕실 여름 궁전 부속이었던 가르니는 보존되었습니다.
주상절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질서 있는 솜씨를 자연 속에서 목격하는 순간입니다. "그가 만드신 만물이 하나님의 영원하신 능력과 신성을 밝히 보여 알게 하나니" (롬 1:20)
가르니 신전은 서기 77년경 아르메니아 왕 트리다테스 1세가 건립한 이오니아식 그레코-로마 신전으로, 코카서스 전체에서 유일하게 남아있는 이교 신전입니다. 24개의 이오니아 기둥이 9단 기단(基壇) 위에 세워져 있으며, 태양신 미트라(Mithras)에게 봉헌된 것으로 추정됩니다. 로마 역사가 타키투스(Tacitus)는 트리다테스 1세가 서기 66년 로마를 방문하여 네로 황제로부터 왕관을 수여받은 사실을 기록하는데, 이 로마 방문이 신전 건축에 영향을 주었을 가능성이 제기됩니다.
1679년 대지진으로 완전히 붕괴된 가르니 신전은 1949-1966년 건축가 알렉산드르 사히니안(Alexander Sahinian)의 주도로 아나스틸로시스 기법을 통해 복원되었습니다. 아나스틸로시스란 원래의 석재를 최대한 활용하여 원래 위치에 재조립하는 복원 방법으로, 아테네 파르테논 신전 복원에도 적용된 국제적 보존 기법입니다. 붕괴 당시 흩어진 원석의 약 80%를 수거하여 사용했습니다.
가르니 협곡의 현무암 주상절리는 약 5천만 년 전 화산 용암이 냉각되며 형성된 것으로, 높이 약 50m의 육각형 기둥들이 파이프 오르간처럼 늘어서 있어 '돌의 교향곡(Symphony of Stones)'이라 불립니다. 이 지역은 게그하드 수도원과 함께 아자트 강 상류 계곡으로서 UNESCO 세계유산(WHC No.960)에 포함됩니다.
창조주 하나님, 주상절리 하나하나에 새겨진 당신의 질서를 봅니다. 태양신에게 드려진 신전도 결국은 당신을 향한 인류의 갈망이었음을 압니다. 이 땅의 모든 민족이 참된 하나님을 만나도록 우리를 선교적 도구로 사용하옵소서.
— 아멘
예레반은 기원전 782년 우라르투 왕국 아르기슈티 1세가 건설한 에레부니(Erebuni) 요새에서 시작된 도시입니다. 로마(기원전 753년)보다 29년 앞선 역사로 2018년 2,800주년을 기념했습니다. 1920년 소련 지배 시작 후 소련식 도시계획으로 장밋빛 투파(Tuff) 석재 건물과 대형 광장이 조성되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어머니 아르메니아 동상이 세워진 자리는 원래 스탈린 동상(1950년 건립 → 1962년 철거) 자리입니다. "하나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말라"는 계명의 역사적 실현을 봅니다. 우상은 사라지지만 민족의 정체성(신앙)은 남습니다.


5세기 초 성직자 메스로프 마슈토츠(Mesrop Mashtots, 362-440년)가 아르메니아 고유 문자를 창제(405년)했습니다. 당시 아르메니아는 비잔틴(서)과 페르시아(동) 두 제국 사이에서 독립을 위협받고 있었습니다. 문자 창제는 성경을 자국어로 번역하여 민족 정체성을 신앙으로 지키려는 생존 전략이었습니다. 이 시기 서로마 제국은 붕괴 직전이었고(476년), 아우구스티누스가 '신국론'을 저술하던 때였습니다.
🏛️ 역사적 배경약 23,000점 필사본과 30만 점 이상의 문서 보유 — 세계 최대 규모 보관소 중 하나. 기원은 에치미아진 수도원 도서관(5세기). 현재 건물은 1959년 소련 시대 건립. 아르메니아어 성경 번역(5세기)은 동시대 제롬의 불가타 성경과 함께 최고의 번역으로 평가받음.
마슈토츠가 문자를 창제한 첫 번째 목적은 성경을 아르메니아어로 번역하는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세계 성경 번역 미완료 언어는 약 1,800개 — 마테나다란은 성경 번역 선교의 역사적 원형입니다. "모든 민족에게 복음을 전하라"(막 16:15)는 명령이 문자 창제로 이어진 것입니다.
공식 명칭 '메스로프 마슈토츠 고대문서 연구소(Mesrop Mashtots Institute of Ancient Manuscripts)'로, 1997년 UNESCO 세계기록유산(Memory of the World)에 등재되었습니다. 약 23,000점의 필사본과 300,000점 이상의 기록문서를 소장하고 있으며, 아르메니아어뿐 아니라 그리스어·아랍어·페르시아어·시리아어·라틴어·히브리어 등 다국어 문헌을 보유합니다. 가장 오래된 소장품은 7-8세기의 '베카모르 복음서(Vehamor Gospel)'입니다.
1170년 셀주크 투르크의 침략 등 중세기 수차례의 전란으로 에치미아진 도서관의 필사본이 대규모로 소실되는 참화를 겪었습니다. 1915년 아르메니아 대학살 와중에는 서아르메니아(현 터키 동부)의 수도원과 교회에서 수많은 필사본이 목숨을 건 구출 작업으로 에치미아진으로 옮겨졌고, 이는 신앙과 문화 보존에 대한 아르메니아인들의 집념을 보여줍니다.
마테나다란의 가장 독보적인 가치는 원어 원본이 소실된 고대 문헌의 아르메니아어 번역본을 보존하고 있다는 점입니다. 고대 그리스 철학·의학·천문학·역사 문헌 중 아르메니아어 번역으로만 남아있는 것들이 상당수이며, 이는 5세기 '번역가들의 황금기(Golden Age of Translators)'에 조직적으로 번역된 것입니다. UNESCO는 마테나다란을 "세계에서 가장 풍부한 중세 필사본 컬렉션 중 하나"로 평가합니다.
말씀을 보존하기 위해 문자를 만든 마슈토츠의 헌신을 기억합니다. 주님, 오늘 우리에게 주어진 성경이 얼마나 귀한 선물인지 다시 깨닫게 하옵소서. 아직 모국어로 성경을 읽지 못하는 1,800개 언어의 민족들을 위해 기도합니다.
— 아멘


874년, 아르메니아 바그라투니 왕조가 코카서스에서 기독교 왕국을 굳히던 시기입니다. 같은 해 북유럽에서는 바이킹 잉골프 아르나르손(Ingólfr Arnarson)이 아이슬란드 레이캬비크에 첫 정착지를 세웠고, 영국에서는 데인 바이킹이 머시아 왕국을 장악했습니다. 중국에서는 당나라가 황소의 난(875년)으로 붕괴 직전이었고, 이슬람 아바스 칼리프국도 약화되던 시기였습니다. 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는 이 격동 속에서 독자적 기독교 문명의 씨앗을 심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1930–50년대 스탈린 치하 소련은 대규모 관개·수력발전 사업을 시행했습니다. 그 결과 세반 호수 수위가 19.88m 하락(2002년 기준)했고, 면적은 1,416㎢에서 1,242㎢로, 부피는 43% 이상 감소했습니다. 원래 섬에 위치했던 세바나반크 수도원은 수위 하락으로 반도 위에 놓이게 되었습니다. 1981년 아르파-세반 터널이 완공되어 연간 약 2억㎥를 공급하기 시작했고, 2019년 11월 기준 수위는 1,900.44m로 회복 중입니다 (목표: 2029년까지 1,903.5m).
세바나반크의 두 교회는 9세기 아르메니아 교회 건축의 전형을 보여줍니다. 검은 화산 응회암으로 지어진 십자형(그리스 십자) 평면에 팔각형 탬버(drum) 위 돔을 얹은 구조입니다. 원래 가비트(전실, narthex)가 있었으나 현재는 잔해만 남아 있으며, 목조 기둥 6개가 지지하던 구조의 일부가 예레반 역사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수도원에는 창건 당시부터 학교와 도서관이 함께 운영되었으며, 이는 아르메니아 수도원 문화의 ‘신앙과 학문 결합’ 전통을 잘 보여줍니다.
주님, 이 광활한 호수 앞에 섭니다. 874년 마리암 공주가 이 섬에 수도원을 세웠듯이, 우리도 삶의 한가운데 예배의 자리를 세우게 하옵소서. 소련이 수위를 낮추어 섬을 육지로 만들었어도 수도원은 그 자리를 지켰습니다. 세상이 우리의 환경을 바꿀 수 있어도, 주님을 향한 예배를 빼앗아 가지 못하게 하옵소서.
— 아멘



아흐파트 수도원이 건립된 976–991년은 세계사적 전환기였습니다. 976년 비잔틴 제국에서는 바실리우스 2세(Basil II, 재위 976–1025)가 즉위해 동방 기독교 세계의 절정기를 이끌었고, 중국에서는 송 태조가 사망(976년 11월 14일)해 송나라의 새 황제가 즉위했습니다. 988년에는 키예프 루스의 블라디미르 1세가 동방 정교회를 국교로 채택해 슬라브 기독교 문명의 토대를 놓았습니다. 코카서스의 아르메니아는 바그라투니 왕조의 황금기를 누리며 이 시기에 아흐파트·사나힌 같은 걸작을 남겼습니다.
🏛️ 역사적 배경아흐파트 수도원과 사나힌 수도원은 데베드(Debed) 강을 낀 협곡 양쪽에서 서로 마주보며 서 있습니다. 두 수도원은 1996년 “아흐파트와 사나힌의 수도원들(Monasteries of Haghpat and Sanahin)”로 UNESCO 세계유산에 공동 등재되었습니다(WHC No.777). UNESCO는 두 수도원이 비잔틴 교회 건축 양식을 코카서스 지역의 토착 건축 전통과 독창적으로 융합한 걸작이라고 평가합니다 (기준 ii). 또한 10–13세기 아르메니아에서 발전한 종교·교육 건축의 탁월한 유형을 대표합니다(기준 iv). 사나힌은 특히 채식 화가·서예 학교로 유명했으며, 아흐파트는 신학 교육과 필사본 제작의 중심이었습니다.
아흐파트의 “대가비트(Great Gavit)”는 1208년 이후 건립된 21×18m 규모의 전실(前室)입니다. 두 쌍의 교차 아치(스팬 12m)가 천장을 지지하고, 지붕 중앙의 소형 돔(6개 기둥 지지)이 주요 채광원 역할을 합니다. 가비트는 단순한 입구 공간이 아니라 예배 전 집회·교육·재판·매장이 이루어지는 다목적 공간으로, 아르메니아 고유의 건축 유형입니다. 내부와 외부는 십자가·명문·장식 문양으로 가득 채워져 있으며, 키우리키안(Kyurikian) 왕가와 자카리안(Zakarian) 귀족 가문의 주요 묘소로도 기능했습니다.
하치카르(Khachkar)는 아르메니아 고유의 십자가석 예술로, 동일한 문양이 단 하나도 없습니다(2010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아흐파트의 아멘아프르키치(Amenaprkich, “구세주”) 하치카르는 1273년 장인 바흐람(Vahram)이 제작했습니다. 예수 수난상을 중심으로 성모 마리아·막달라 마리아·천사·12사도가 사실적으로 묘사된 이 작품은 아르메니아 중세 석조 예술의 최고봉으로 평가됩니다.
1,000년 전 왕비의 후원으로 세워진 이 돌들이 오늘도 하나님을 향해 서 있습니다. 몽골의 말발굽도, 셀주크의 칼날도 이 예배를 멈추지 못했습니다. 우리 삶을 가로막는 것들 앞에서도 예배를 포기하지 않는 믿음을 허락하옵소서. 가비트에 스며드는 저 빛처럼, 주님의 빛이 우리 가장 어두운 곳에 임하게 하옵소서.
— 아멘아르메니아에서 조지아로 넘어가는 사다클로(Sadakhlo/Bagratashen) 국경입니다. 아흐파트 수도원에서 약 50km 거리이며 버스로 약 50분 소요됩니다. 국경을 통과할 때는 각자의 가방을 직접 들고 약 100m 도보 구간을 이동합니다. 출입국 심사 대기 시간이 발생할 수 있으므로 충분한 물과 간식을 준비하세요.



오늘부터 순례 내내 “포도나무 십자가”가 핵심 상징으로 등장합니다. 성녀 니노가 포도나무 가지로 엮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묶은 이 소박한 십자가는 조지아 기독교의 상징입니다. 실물은 DAY 8에 방문하는 트빌리시 시오니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늘 즈바리 교회에서 십자가를 세운 자리를 보며, DAY 7 보드베에서 니노의 무덤을 만나고, DAY 8에 십자가 실물 앞에 서는 여정을 기억하며 걸어가십시오.
조지아가 기독교를 국교로 선포한 337년은 로마 황제 콘스탄티누스(재위 306-337년)가 사망하던 해입니다. 콘스탄티누스는 밀라노 칙령(313년)으로 기독교를 공인했으나, 조지아는 이미 그 전부터 성녀 니노의 선교로 독자적인 기독교화 과정을 밟고 있었습니다. 므츠헤타는 기원전 3세기부터 약 1,000년간 이베리아(Iberia) 왕국의 수도였으며, 아라그비강과 쿠라강 합류 지점의 전략적 실크로드 요충지였습니다.
🏛️ 역사적 배경스베티츠호벨리('생명을 주는 기둥'): 최초 4세기 건립 → 현재 건물 1010-1029년 재건(건축가 아르수키스제). 높이 54m. 수세기에 걸쳐 조지아 왕들의 대관식·장례식 거행지. 즈바리('십자가') 교회: 590-605년 건립, 성녀 니노가 십자가를 세운 자리.
카파도키아(현 터키) 출신의 젊은 여성 선교사 니노(c.296-338년)는 포도 넝쿨로 엮은 십자가를 들고 조지아에 도착했습니다. 기적적인 병 치유와 담대한 복음 선포로 미리안 3세 왕과 왕비 나나의 개종을 이끌었고, 337년 조지아 기독교 국교화를 이루었습니다. 포도나무 십자가는 현재 트빌리시 시오니 대성당에 보관 중입니다.
므츠헤타의 역사 기념물군은 1994년 UNESCO 세계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WHC No.708). 등재 기준은 iii(사라진 조지아 왕국의 높은 예술·문화에 대한 독보적 증언)과 iv(코카서스 중세 교회 건축의 탁월한 사례)입니다. 즈바리(Jvari) 교회(590-605년)는 '즈바리 양식' 테트라콘크(사엽형 평면)의 창시자로, 돔이 기둥 없이 벽체 위에 직접 올려지는 구조적 혁신을 달성했습니다. 높이 25m 미만이지만 벽체 구조만으로 웅장한 내부 공간감을 만들어냅니다.
스베티츠호벨리(Svetitskhoveli)는 조지아어로 '생명을 주는 기둥'을 뜻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1세기에 조지아 유대인 엘리오즈(Elioz)가 예루살렘에서 예수님의 겉옷을 가져왔고, 그의 누이 시도니아가 옷을 껴안은 채 숨졌습니다. 그 무덤에서 삼나무가 자라났고, 성녀 니노가 이 나무를 베어 교회 기둥으로 세웠더니 기둥에서 기름이 흘러 병자를 치유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대성당은 11세기(1010-1029년) 건축가 아르수키제(Arsukidze)에 의해 재건된 것이며, 미리안 3세의 무덤이 내부에 있습니다.
성녀 니노(c.296-338)는 카파도키아 출신의 여성 선교사로, 조지아·아르메니아·그리스·로마 등 4개국 사료에서 교차 확인되는 역사적 실존 인물입니다. 포도나무 가지로 엮어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묶은 십자가를 들고 이베리아(동부 조지아)에 왔으며, 왕비 나나의 병 치유를 계기로 미리안 3세의 개종과 337년 기독교 국교화를 이끌었습니다. 그녀의 포도나무 십자가 원본은 현재 트빌리시 시오니 대성당에 소장되어 있습니다.
성녀 니노처럼 소박한 포도나무 십자가 하나를 들고 우리를 부르시는 주님, 화려한 것이 아닌 순수한 복음의 능력으로 세상을 변화시키는 삶을 살게 하옵소서. 우리 교회가 이 시대의 '생명을 주는 기둥'이 되게 하옵소서.
— 아멘


기원전 1000년경 조성된 우플리스치헤는 고대 실크로드의 핵심 교역도시였습니다. 기원전 6세기~서기 1세기에 이베리아(조지아) 왕국의 수도 역할을 했고, 최전성기(1-3세기)에는 약 20,000명이 거주했습니다. 기원전 6세기는 고레스 대왕이 바벨론을 정복(기원전 539년)하고 유대인의 포로 귀환을 허락하던 시기입니다.
🏛️ 역사적 배경현무암 절벽을 깎아 만든 700개 이상의 동굴 구조물. 극장·약국·제빵소·포도주 제조소·감옥 발굴. 4세기 기독교화 후 이교 신전 → 교회로 개조. 1122년 다비드 4세가 셀주크 투르크 격퇴 후 정치 기능 상실. 1283년 몽골 침략으로 완전 폐허화.
이교 신전이 교회로 변모한 우플리스치헤는 초기 선교의 패턴을 보여줍니다. 바울이 아테네 이교 문화에서 복음의 접점을 찾은 것처럼(행 17장), 조지아 기독교도 기존 성소(聖所)를 복음화 공간으로 변환했습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전에 계시지 아니하시고" (행 17:24) — 그러나 사람은 늘 거룩한 공간을 갈망합니다.
우플리스치헤(Uplistsikhe)는 조지아어로 '신의(주의) 요새'를 뜻합니다. 기원전 1000년경부터 사용된 흔적이 확인되며, 전성기(기원전 6세기~기원후 1세기)에는 이교 신앙의 중심지이자 실크로드 교역 도시로 인구 약 20,000명이 거주했습니다. 700개 이상의 동굴이 확인되었으며, 극장·약국·감옥·이교 신전·와인 저장고(크베브리 구덩이) 등 도시 기반시설이 바위를 파서 만들어졌습니다.
337년 조지아의 기독교 국교화 이후 우플리스치헤의 이교 신전들은 교회로 전환되었습니다. 9-10세기에는 바위 위에 '왕자의 교회(Prince's Church)'라 불리는 3중 바실리카 양식의 석조 교회가 건설되어 동굴도시의 기독교적 정체성을 상징합니다. 이 시기 우플리스치헤는 아랍 침략을 피한 조지아 왕실의 피난처이자 임시 수도 역할을 했습니다.
13세기 몽골 침공(1240년대)으로 도시는 대규모로 파괴되어 사실상 폐허가 되었습니다. 이후 복구되지 못하고 점차 버려졌습니다. 조지아 국립박물관의 발굴 조사를 통해 헬레니즘 시대의 도자기, 청동기 유물, 이교 의식 관련 유구가 다수 출토되었으며, 실크로드 국제 교역의 증거인 중국·인도·페르시아산 유물도 발견되었습니다.
3,000년 전 이 절벽 위에 살았던 이들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하나님, 당신은 모든 시대 모든 민족이 당신을 갈망하도록 창조하셨습니다. 우리가 만나는 모든 이에게서 그 갈망을 보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구다우리에서 카즈베기로 향하는 군용 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 변에 자리한 반원형 파노라마 조형물입니다. 1983년 러시아·조지아 조약 체결 200주년을 기념해 건립되었으며, 내벽 모자이크 벽화에 두 나라 역사의 주요 장면이 담겨 있습니다. 이곳에서 바라보는 대코카서스 산맥의 파노라마 경치가 압도적입니다.


14세기는 조지아가 몽골(일 칸국) 지배에서 벗어나 자치를 회복해가던 시기입니다. 한편 흑사병(1347-1351년)이 유럽을 휩쓸어 인구의 1/3이 사망하고, 오스만 제국이 성장하던 격변기였습니다. 카즈베기(스테판츠민다) 지역은 러시아-조지아 국경 지대로, 수세기 동안 외침으로부터 성유물을 보호하는 피난처 역할을 했습니다.
🏛️ 역사적 배경해발 2,170m(7,120ft) 산 위의 14세기 조지아 정교회 교회. The Telegraph 선정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교회 23선 중 6위'. 소련 시대 예배 금지 → 1991년 독립 후 예배 재개. 18세기 역사가 바크후쉬티 기록에 따르면 므츠헤타의 귀중한 성유물(성 니노의 십자가 포함)을 위기 시 이곳으로 이송.
🇰🇷 그 당시 대한민국소련 70년 무신론 지배 아래에서도 이 교회는 살아남았습니다. 1921-1991년 소련 지배 기간, 조지아 교회 신자들은 비밀리에 신앙을 유지했습니다. 독립 후 첫 십 년 만에 교인 수가 급증했습니다.
게르게티 삼위일체(Tsminda Sameba) 교회는 해발 2,170m, 카즈베기산(5,054m) 아래에 위치한 14세기 건립의 십자형 돔 교회입니다. 헤비(Khevi) 지방에서 유일한 돔 교회로, 정확한 건축가와 건축 연도는 전해지지 않습니다. 내부에는 16세기에 제작된 프레스코화가 남아있으며, 성모 마리아·구세주·세례 요한·성녀 니노가 묘사되어 있습니다.
18세기 역사가 바후슈티 바토니슈빌리(Vakhushti Batonishvili)는 그의 저서 『조지아 왕국의 기술(Description of the Georgian Kingdom)』에서, 외적 침입 등 국가 위기 시 므츠헤타의 성유물(특히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이 이 산악 교회로 피난했다고 기록합니다. 험준한 산악 지형이 천연 요새 역할을 한 것입니다. 교회에는 '사아브드로(악천후용)'와 '사다로(좋은 날씨용)' 두 종류의 이콘이 보관되어, 날씨에 따라 다른 이콘을 기도에 사용하는 독특한 전통이 있습니다.
카즈베기산에는 그리스 신화의 프로메테우스와 유사한 조지아 전설이 전해집니다. 영웅 아미라니(Amirani)가 신에게 불을 훔쳐 인간에게 주었다가 산에 쇠사슬로 묶였다는 이야기입니다. 해발 4,100m의 베들레헴(Betlemi) 동굴에서는 고대 유물이 발견되어 선사시대부터 이 산이 신성시되었음을 보여줍니다. 소련 시대(1921-1991)에는 예배가 금지되었으나 건물은 보존되었고, 1991년 독립 후 조지아 정교회에 반환되어 예배가 재개되었습니다.
해발 2,170m, 만년설 아래 이 교회에서 주일예배를 드립니다. 소련도 막지 못한 이 예배가 오늘도 계속되듯, 우리 교회의 예배도 어떤 세력도 막을 수 없음을 선포합니다. 주님, 우리의 예배를 받아 주옵소서.
— 아멘


아나누리는 13세기부터 이 지방을 통치한 아라그비(Aragvi) 봉건 공국의 거점이었습니다. 16-18세기에는 아라그비 공작들이 조지아 왕을 위협할 만큼 강성해져 내전이 잦았습니다. 1739년 이웃 공국 크사니(Ksani)의 샨셰가 침공해 아라그비 가문을 학살한 역사적 비극의 현장이기도 합니다. 이 시기 유럽에서는 계몽주의 운동이 절정에 달하고 있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두 개의 탑(쉬우피 탑·므크브레탑)과 성벽, 두 개의 교회로 구성. 아라그비 가문의 문장(紋章)인 포도나무·십자가 부조 장식이 인상적. 1986년 진발리 댐 완공으로 저수지(진발리 호수)가 형성되어 현재의 절경 완성. 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 등재.
🇰🇷 그 당시 대한민국성 안 교회의 포도나무 조각은 요한복음 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의 이미지입니다. 전쟁과 정치권력의 부침 속에서도 교회는 살아남아 오늘도 예배가 드려집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마 18:20)
포도나무 십자가가 새겨진 이 성벽 앞에서 기도합니다. 우리 교회가 내분이 아닌 하나됨으로, 권력 다툼이 아닌 섬김으로 서가게 하옵소서. 나는 포도나무요 우리는 가지라 — 주님 안에 머물게 하옵소서.
— 아멘아라그비(Aragvi) 공국은 13세기부터 코카서스 군용 도로(게오르기아 군용 도로)의 전략적 요충지를 지배했습니다. 전성기에는 조지아 왕권에 필적할 만큼 강성해졌으나, 1739년 이웃 크사니(Ksani) 공국의 침공으로 아라그비 가문이 전멸하는 비극이 발생했습니다. 내분과 권력 다툼이 공동체를 파괴한 전형적 사례입니다.
1986년 소련이 완공한 진발리(Zhinvali) 댐은 아라그비 강을 막아 트빌리시 식수의 약 80%를 공급합니다. 댐 건설로 아라그비 계곡의 고대 마을들이 수몰되었지만, 아나누리 성채와 에메랄드빛 진발리 호수의 절경이 완성되었습니다. 유네스코(UNESCO) 세계문화유산 잠정목록에 등재되어 있습니다.

진발리 댐은 소련 시대인 1986년 완공되었습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1986년 4월)와 같은 해에 완공된 이 댐은 트빌리시 식수의 약 80%를 공급하는 생명줄입니다. 냉전 말기 소련의 기간시설 투자의 결과물이지만, 댐 건설로 아라그비 강 계곡의 여러 마을이 수몰되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면적 약 11.5㎢, 해발 870m. 에메랄드 빛 맑은 물과 아나누리 성채의 반영(反映)이 절경. 아라그비 강을 막아 조성한 인공호수. 조지아 군용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를 따라 카즈베기로 향하는 길목에 위치.
✝️ 기독교 역사적 의미"에스겔이 본 생명수 강"(겔 47장)처럼, 광야 같은 코카서스 산악 지대에 풍성한 물이 있습니다. 사람이 만든 댐이 도시에 생명수를 공급하듯, 교회는 세상에 생명수(복음)를 공급하는 사명이 있습니다.



6세기 초는 비잔틴 제국(동로마)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재위 527-565년) 전성기로, 로마법 편찬(529년)과 하기아 소피아 대성당 건립(537년)이 이루어진 시기입니다. 한편 아시아에서는 13명의 시리아(아시리아) 수도사들이 박해를 피해 또는 선교 열정으로 조지아로 이주하여 수도원 운동의 기초를 놓았습니다. 이들은 시리아 안티오크 수도원 전통을 이은 성 요한 제다즈넬리(St. John of Zedazeni)를 지도자로 한 12제자였다고 전해집니다.
🏛️ 역사적 배경6세기 다비드 가레자(David Gareji)가 가레자 사막 동굴에 정착하며 시작. 18개 수도원, 25km에 걸쳐 분포. 8-13세기 프레스코 벽화 보존. 8세기 말~9세기 초 아바스(아랍) 침략으로 파괴 → 재건. 13세기 몽골 침공기 파괴. 1615-16년 페르시아 샤 압바스의 수도사 학살(약 6,000명 사망 전승 — 정확한 숫자는 역사적으로 과장 논란 있음). 2007년 UNESCO 잠정목록 등재.
13명의 아시리아 선교사들은 박해를 피해 새로운 땅에서 복음을 전한 초기 선교사들입니다. 이들이 세운 수도원 전통은 6세기 이후 조지아 기독교를 문화적으로 풍요롭게 하였고, 프레스코 벽화 예술, 필사본 전통, 교회 음악의 발전으로 이어졌습니다.
다비드가레자는 6세기 시리아 출신 '13명의 아시리아 교부(Thirteen Assyrian Fathers)' 중 한 명인 성 다비드 가레젤리(St. David Garejeli)가 설립했습니다. 이들은 시리아의 금욕적 수도원 전통을 조지아에 전파한 선교사 그룹으로, 안디옥에서 트빌리시를 거쳐 반사막 지대로 들어가 수도원을 개척했습니다. 전성기에는 약 5,000명의 수도사가 15개 이상의 수도원에서 생활했으며, 수백 개의 동굴 셀(cell)과 정교한 관개 시스템이 운영되었습니다. 2007년 UNESCO 잠정목록에 등재되었습니다(No.5224).
아제르바이잔 국경에 면한 우드바노 수도원에는 8-14세기에 제작된 동굴 벽화가 남아있습니다. 특히 '최후의 만찬' 프레스코화는 비잔틴·페르시아·코카서스 양식이 독특하게 융합된 걸작으로 평가됩니다. 인물의 얼굴 표현에 비잔틴의 정면성, 의복 문양에 페르시아의 장식성, 색채에 코카서스 고유의 생동감이 어우러져 있습니다. 그러나 아제르바이잔 국경 인접으로 인한 접근 제한과 노출된 환경으로 보존 상태가 우려되고 있습니다.
13세기 몽골 침공, 16-18세기 페르시아(사파비 왕조)의 반복적 공격으로 여러 차례 파괴되었으나, 그때마다 수도사들이 돌아와 재건했습니다. 소련 시대에는 군사 훈련장으로 사용되어 벽화 일부가 사격 훈련에 의해 훼손되는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현재는 조지아 정교회가 관리하며 일부 수도사가 상주하고 있습니다.
사막 한가운데 이 수도원에서 기도합니다. 13명의 선교사가 사막으로 들어온 것처럼, 우리도 불편하고 힘든 자리에서 주님을 만나는 믿음을 갖게 하옵소서.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 우리 앞의 광야에도 길을 내주옵소서.
— 아멘


시기나기가 번성한 18세기는 조지아 카헤티(Kakheti) 왕국이 페르시아와 러시아 사이에서 독립을 위해 고군분투하던 시기입니다. 1762년 에레클레 2세(Erekle II)는 카르틀리-카헤티 왕국을 통일했으나, 1783년 게오르기옙스크 조약으로 러시아의 보호국이 되었고, 1801년 결국 러시아에 합병됩니다. 카헤티는 세계 최초 와인 생산지 중 하나(약 8,000년 전)로 평가받는 지역입니다.
🏛️ 역사적 배경해발 800m 절벽 위 도시. 18세기 에레클레 2세가 페르시아 침략에 맞서 건설한 4.5km 성벽(총 28개 망루, 현존 23개)으로 유명. 이탈리아 토스카나 지방과 유사한 경관으로 '코카서스의 발코니', '조지아의 시에나'라 불림. 2007년 조지아 정부가 대규모 보수 공사로 관광지화.
조지아는 약 8,000년 전부터 포도를 재배하고 와인을 생산해 온 세계 최고(最古)의 와인 문화입니다. 조지아의 전통 와인 제조법인 크베브리(Qvevri)는 2013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시기나기에서 내려다보이는 알라자니(Alazani) 강 계곡은 광대한 카헤티 포도밭 지대입니다. 조지아 교회의 상징인 포도나무(요 15장)가 실제 이 땅에서 수천 년째 자라고 있습니다. 절벽 위 도시처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마 5:14) — 신앙인의 삶은 세상에서 보여야 합니다.
8,000년 전부터 이 땅에서 자란 포도나무처럼, 우리 신앙 공동체도 깊이 뿌리를 내리게 하옵소서. 주님 안에 머물러 많은 열매를 맺는 가지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시기나기 성벽은 18세기 에레클레(헤라클리우스) 2세(재위 1762-1798)가 페르시아와 레즈긴 침략으로부터 피난민을 보호하기 위해 건설했습니다. 28개의 탑과 4km 성벽이 도시를 두릅니다. 에레클레 2세는 1783년 조지아-러시아 게오르게프스크 조약을 체결하여 러시아의 보호를 받았으나, 이것이 1801년 완전합병으로 이어지는 비극의 씨앗이 되었습니다.
카헤티(Kakheti) 지방의 크베브리(Qvevri, 땅에 묻는 점토 항아리) 와인 양조 전통은 2013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8,000년 이상의 역사를 가진 세계 최고(最古) 와인 생산 전통입니다. 조지아어 와인 'ღვინო(ɣvino)'와 라틴어 'vinum'의 어원적 관련성에 대한 학설이 있으나, 주류 언어학계는 원시 인도·유럽어 *wóyh₁nom에서 각각 파생·차용된 것으로 봅니다. 조지아 교회의 상징인 포도나무(요 15장)가 이 땅에서 실제로 수천 년째 자라고 있습니다.


성녀 니노(c.296-338년)가 카파도키아(현 터키)에서 조지아로 온 것은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313년 밀라노 칙령) 직후였습니다. 당시 로마 제국 동쪽 변방 조지아에서 젊은 여성 선교사가 왕실을 개종시키고 337년 기독교 국교화를 이끈 것은, 초기 교회사에서 가장 놀라운 선교 이야기 중 하나입니다. 니노가 세상을 떠난 338년은 콘스탄티누스 황제가 세상을 떠난 해이기도 합니다.
🏛️ 역사적 배경성녀 니노가 말년에 시기나기 인근 보드베에 은거하다 338년경 선교사로서의 삶을 마감한 곳. 미리안 왕이 니노를 므츠헤타로 모시려 했으나 니노는 보드베에서 조용히 안식하기를 원했다는 전승. 9세기 아다르나세 왕이 성당 건립. 현재 수녀원 운영 중. 성녀 니노의 무덤 위에 제단 설치.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실물은 내일(DAY 8) 방문하는 트빌리시 시오니 대성당에 보관되어 있습니다. 오늘 이곳 보드베에서 니노의 무덤 앞에 서며, 그녀의 손으로 만든 십자가를 내일 직접 만나게 됩니다.
보드베는 니노의 무덤이자 조지아 기독교의 영적 고향입니다. 수많은 전쟁과 파괴에도 이 교회는 살아남았고, 오늘도 수녀들이 기도를 드립니다. 요한복음 12:24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 니노의 생애가 이 말씀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보드베(Bodbe) 수도원은 성녀 니노(c.296-338)가 선교 활동을 마치고 마지막 생을 보낸 곳입니다. 전승에 따르면 미리안 3세가 성녀 니노의 유해를 므츠헤타로 이장하려 했으나, 200명의 병사가 관을 들어올리지 못했고, 이를 하나님의 뜻으로 받아들여 이 자리에 교회를 건립했다고 합니다. 현재의 교회 건물은 주로 9세기에 건립되었으며 이후 여러 차례 보수되었습니다. 교회 아래쪽에는 ‘성녀 니노의 샘(St. Nino’s Spring)’이라 불리는 치유 순례지가 있으며, 2003년 세례당이 건설되어 순례자들이 세례를 받을 수 있습니다.
시그나기(Sighnaghi)가 위치한 카헤티(Kakheti) 지역은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포도주 생산지 중 하나입니다. 땅속에 묻은 토기항아리 ‘크베브리(Qvevri)’에서 포도를 발효시키는 전통 양조법은 약 8,000년의 역사를 가지며, 2013년 UNESCO 인류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되었습니다. 성경에서 노아가 방주에서 나온 뒤 포도를 재배한 기록(창세기 9:20)과, 코카서스가 세계 최초 와인 생산지라는 고고학적 증거가 겹치는 것은 흥미로운 점입니다.
시그나기는 18세기 카헤티의 에레클레 2세(Erekle II)가 건설한 성곽도시로, ‘코카서스의 발코니(Balcony of the Caucasus)’라 불립니다. 약 4.5km에 달하는 성벽과 23개의 탑이 알라자니(Alazani) 계곡과 대(大)코카서스 산맥을 조망하며 둘러싸고 있습니다. 에레클레 2세는 1783년 러시아와 게오르기예프스크 조약을 체결한 조지아 통일의 영웅으로, 시그나기는 그의 방어 전략의 산물입니다.
성녀 니노의 무덤 앞에서 기도합니다. 그녀처럼 소박한 헌신으로 한 나라를 바꾼 믿음을 우리에게도 주옵소서. 내일 시오니 대성당에서 그녀의 포도나무 십자가를 만날 때, 선교의 열정이 다시 우리 마음에 불타오르게 하옵소서.
— 아멘




트빌리시 시오니 대성당(Sioni Cathedral)에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실물이 보관되어 있습니다. DAY 5 므츠헤타에서 시작된 '포도나무 십자가' 순례의 여정이 오늘 완성됩니다. 시오니 대성당은 트빌리시 구시가지 중심에 있으며 무료입니다.
12세기 이칼토 아카데미가 번성한 시기는 조지아 황금기(다비드 4세 건설자, 재위 1089-1125년, 타마르 여왕, 재위 1184-1213년)와 일치합니다. 유럽에서 볼로냐 대학(1088년)과 옥스퍼드 대학(1096년)이 막 설립되던 시기에, 코카서스에서도 독자적인 고등 교육 기관이 세워졌습니다. 당시 조지아는 페르시아·비잔틴·아랍·아르메니아 문화가 교차하는 문명의 용광로였습니다.
🏛️ 역사적 배경이칼토: 6세기 제논(Zenon, 13명 선교사 중 한 명) 창건. 12세기 '이칼토 아카데미' 설립 — 신학·철학·수사학·천문학·수학 교육. 당시 유명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호랑이 가죽을 걸친 기사' 작가)가 이곳에서 공부했다는 전승 있음(논란).
메테히 교회(5세기 창건 전통, 현 건물은 1278-1289년 재건): 소련 시대(20세기 전반~1988년) 감옥·극장으로 전용. 스탈린도 제정러시아 시대 초기(1900년대 초) 혁명 활동으로 이곳에 수감. 1988년 조지아 정교회에 반환, 현재 활발히 예배 중.
🇰🇷 그 당시 대한민국이칼토(Ikalto) 수도원은 6세기 '13명의 아시리아 교부' 중 한 명인 성 제논(St. Zenon)이 설립했습니다. 12세기 초(1106년경) 다비드 4세(건설왕, David the Builder, 재위 1089-1125)의 후원 하에 그의 조언자 아르센 이칼토엘리(Arsen Ikaltoeli)가 수도원 안에 아카데미를 설립하여 신학·철학·과학·천문학·수사학을 교육했습니다. 이는 코카서스 최초의 고등교육기관 중 하나로 평가됩니다. 전승에 따르면 12세기 조지아 국민 시인 쇼타 루스타벨리(Shota Rustaveli, 서사시 『표범 가죽의 기사』 저자)가 이곳에서 수학했다고 합니다.
시오니(Sioni) 대성당은 6세기 최초 건립된 후 수차례 재건되었으며,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원본이 소장되어 있습니다. 이 성당은 1989년 4월 9일 소련 반대 평화시위('4월 9일 비극')의 중심 장소로, 소련군이 독가스와 야전삽으로 시위대를 진압하여 21명(대부분 여성)이 사망한 참사가 발생했습니다. 이 사건은 조지아 독립운동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시오니 대성당은 신앙과 자유의 상징이 되었습니다.
메테히(Metekhi) 교회는 5세기 최초 건립되었으며, 현재 건물은 13세기 데메트레 2세(Demetre II, 자기희생왕)가 재건한 것입니다. 교회 앞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 기마상은 5세기 트빌리시를 수도로 건설한 왕을 기념합니다. 전승에 따르면 그가 사냥 중 매가 잡은 꿩이 유황온천에 빠져 익는 것을 보고 이곳에 도시를 건설했다고 합니다. 나리칼라(Narikala) 요새는 4세기 페르시아 시대부터 건설된 방어 시설로, 트빌리시의 전략적 중요성을 보여줍니다.
주님, 시오니 대성당에서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 앞에 섰습니다. 1,700년 전의 그 소박한 헌신이 오늘 우리 마음에 다시 불을 붙이게 하옵소서. 우리도 우리 시대의 포도나무 십자가를 들고 복음을 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

조지아 스톤헨지라 불리는 이 기념물의 공식 명칭은 조지아 연대기(Chronicle of Georgia)입니다. 소련 시대인 1985년 착공되었으나,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자금난으로 공사가 중단된 채 미완성으로 남아 있습니다. 냉전 말기 소련의 문화 정책과 조지아 민족 정체성의 충돌을 보여주는 역사적 산물입니다.
🏛️ 역사적 배경트빌리시 외곽 케니(Keeni) 언덕, 트빌리시 호수(일명 트빌리시 바다) 옆에 위치. 조지아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주라브 체레텔리(Zurab Tsereteli)가 설계했습니다. 총 16개의 거대한 기둥(높이 30-35m)으로 이루어져 있으며, 기둥 상단에는 조지아의 역대 왕과 영웅들이, 하단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 장면이 조각되어 있습니다. 성녀 니노의 십자가와 조지아 역사 문헌 내용도 새겨져 있으며, 기념물 옆에는 작은 예배당(수태고지 교회)이 있습니다.
🇰🇷 그 당시 대한민국16개 기둥에는 조지아 기독교 역사의 핵심 인물들과 그리스도의 생애가 새겨져 있습니다. 성녀 니노의 십자가가 중앙에 우뚝 서서 "조지아는 기독교 국가"임을 선언합니다. 소련 무신론 체제 하에서도 신앙을 지킨 조지아 정교회의 저항 정신이 담긴 기념물입니다. "너희는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 (요 16:33).
조지아 연대기(Chronicle of Georgia)는 조지아 출신의 세계적 조각가 주라브 체레텔리(Zurab Tsereteli, 1934~)가 설계했습니다. 1985년 착공, 총 16개의 기둥(높이 약 35m)에 조지아 건국 신화부터 현대까지의 역사가 부조로 새겨져 있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와 함께 자금이 끊겨 미완성 상태로 방치되었으며, 소련 해체를 보여주는 상징적 아이콘이 되었습니다.
중앙 기둥에는 성녀 니노의 포도나무 십자가가 우뚝 서 있으며, 16개 기둥 전체에 성인들과 조지아 왕들이 새겨져 있습니다. 소련 무신론 시대에 기독교 역사를 돌에 새기려는 시도 자체가 저항의 상징이었습니다. 현재 조지아 정교회는 이 기념물을 국가적 성소(聖所)로 여깁니다.


6세기 비잔틴 제국과 사산 왕조 페르시아가 코카서스를 놓고 격돌하던 시대, 조지아(당시 이베리아 왕국)는 두 강대국 사이에서 기독교 신앙을 지키는 완충지대였습니다. 유스티니아누스 1세(527-565)의 비잔틴 제국이 지중해 세계를 지배하던 바로 그 시기에 시오니 대성당이 최초 건립되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6세기 최초 건립 이후 아랍 침략(7-8세기), 셀주크 침공(11세기), 1226년 호라즘 샤의 파괴를 거쳐 수차례 재건되었습니다. 다비드 4세(건설왕)의 재건 등 여러 차례 보수를 거쳐 현재에 이릅니다. 조지아 정교회 총대주교좌 성당으로서 트빌리시의 정신적 중심지였습니다.
🇰🇷 그 당시 대한민국성녀 니노가 자신의 머리카락으로 포도나무 가지를 묶어 만든 십자가는 단순한 유물이 아닙니다. 요한복음 15장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의 이미지를 문자 그대로 구현한 신앙의 상징물입니다. 조지아 정교회는 이를 '니노의 십자가(Cross of Saint Nino)'라 부르며 조지아 기독교화의 가장 신성한 유물로 보존합니다.
1989년 4월 9일, 소련군은 트빌리시 루스타벨리 대로의 정부청사(House of Government) 앞에서 평화 시위대를 야전삽과 독가스로 진압하여 21명(대부분 여성)이 사망했습니다. 이 '4월 9일 비극'은 조지아 독립 운동의 결정적 전환점이 되었으며, 조지아는 1991년 4월 9일 독립을 선언했습니다.


5세기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 왕이 트빌리시를 수도로 건설하던 시기, 서로마 제국이 멸망(476년)하고 유럽은 게르만 민족의 대이동으로 혼란에 빠졌습니다. 바흐탕 고르가살리는 비잔틴 제국의 지원을 받아 사산 페르시아와 싸운 기독교 왕으로, 코카서스 기독교 문명의 수호자였습니다.
🏛️ 역사적 배경5세기 바흐탕 고르가살리 왕이 창건한 것으로 전해지며, 현 건물은 1278-1289년 데메트레 2세(자기희생왕)가 재건했습니다. 소련 시대(1937-1988)에는 감옥과 극장으로 전용되었습니다. 젊은 스탈린도 혁명 활동으로 이곳에 수감된 바 있으며, 1988년 조지아 정교회에 반환 후 현재 활발히 예배 중입니다.
🇰🇷 그 당시 대한민국메테히 교회는 중세 조지아의 전형적인 크로스-인-스퀘어(cross-in-square, 십자형 돔) 양식으로 건립되었습니다. 이 양식은 비잔틴 건축의 영향을 받아 조지아·아르메니아 중세 교회에서 발전한 형식으로, 동방 교회 건축의 독자성을 보여줍니다.
소련 시대 감옥으로 전용된 메테히 교회에 수감된 대표적 인물이 젊은 이오시프 주가슈빌리(Josef Dzhugashvili), 즉 훗날의 스탈린입니다. 그는 1901년 혁명 활동으로 체포되어 이곳에 수감되었습니다. 교회를 감옥으로 만든 체제의 수장이 된 그가 바로 그 교회의 수감자였다는 역사적 아이러니가 있습니다. 1988년 조지아 정교회에 반환되었을 때, 이 교회는 스탈린 체제보다 오래 살아남았습니다.



1991년 소련 붕괴 후 독립을 회복한 조지아는 경제 붕괴와 내전(압하지야, 남오세티야 분쟁)의 혼란 속에서도 국민 자발적 헌금으로 이 대성당을 건립했습니다. 1995년 착공 당시 조지아의 1인당 GDP는 약 $600에 불과했습니다. 2004년 미하일 사카슈빌리의 장미혁명 직후 완공 — 민주화와 신앙 부흥이 동시에 일어났습니다.
🏛️ 역사적 배경착공 1995년, 완공 2004년. 높이 84m로 조지아 최고 종교 건물. 소련 70년 무신론 지배 후 국민이 자발적 헌금으로 건립한 신앙 부흥의 상징. 조지아 정교회 신자 비율: 소련 붕괴 직후 약 30% → 2020년대 약 85%로 급증.
🇰🇷 그 당시 대한민국독립 후 조지아 정교회의 수장 일리아 2세 총대주교(재임 1977-2026)는 소련 시대에도 신앙을 지키며 독립 후 교회 부흥을 이끌었고 2026년 3월 17일 선종했습니다. 사메바 대성당은 단순한 건물이 아닌, 소련 체제에 짓눌렸던 신앙이 되살아나는 '부활의 증거물'입니다.
츠민다 사메바(Tsminda Sameba, '거룩한 삼위일체') 대성당은 높이 84m(십자가 포함 101m)로 코카서스 전체에서 가장 큰 종교 건축물입니다. 건축가 아르키일 민디아쉬빌리(Archil Mindiashvili)가 설계했으며, 1995년 착공하여 2004년 완공되었습니다. 전통 조지아 교회 양식(십자형 돔)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건축으로, 건설비의 대부분은 국민의 자발적 헌금으로 충당되었습니다. 이는 1990년대 경제 위기 속에서 이루어진 것이라 더욱 의미 깊습니다.
소련 시대(1921-1991) 조지아에서는 수천 개의 교회가 폐쇄·파괴되었고, 다수의 성직자가 처형 또는 시베리아로 유배되었습니다. 교회 출석률은 전 인구의 약 30%까지 떨어졌습니다. 독립 후 총대주교 일리아 2세(Ilia II, 재임 1977-2023)의 지도 아래 급속한 부흥이 이루어져, 2020년대 기준 조지아 국민의 약 85%가 정교회 신자로 자신을 정체화합니다. 사메바 대성당은 이 부흥의 절정이자 상징으로, 대통령 취임식 등 국가 행사가 이곳에서 거행됩니다.
일리아 2세는 소련 시대인 1977년에 총대주교로 즉위하여, 약 49년간 조지아 정교회를 이끌었습니다. 그는 소련 체제 하에서도 교회의 독립성을 유지했으며, 독립 후에는 대규모 세례식(한 번에 수백 명 유아 세례)을 정기적으로 집전하여 조지아의 출산율 증가에까지 기여했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2026년 3월 17일 93세로 선종하여 국장(國葬)이 거행되었습니다.
소련이 무너뜨리지 못한 신앙이 이 대성당으로 꽃피었습니다. 우리 교회도, 대전도, 한국 교회도 이 시대에 이런 부흥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가난했지만 헌금으로 세운 이 성당처럼, 우리도 드릴 수 있는 최선을 주님께 드리겠습니다.
— 아멘


트빌리시(Tbilisi)라는 도시 이름 자체가 조지아어로 '따뜻한 샘'(Tpili)에서 유래했습니다. 5세기 바흐탕 고르가살리(Vakhtang Gorgasali) 왕이 매 사냥 중 꿩이 온천에 빠져 상처가 치유되는 것을 보고 도시를 건설했다는 전설이 있습니다(역사적 정확성 논란). 트빌리시는 6세기부터 이 지역 정치·문화 중심지가 되어 실크로드 교역의 핵심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아바노투바니(Abanotubani) 지구: 돔형 지붕의 노천 유황온천 목욕탕 밀집 지역. 유황 함량이 높아 피부 질환에 효과적으로 알려짐. 푸시킨, 뒤마, 그리보예도프 등 19세기 러시아 문인들이 방문 기록 남김. 나리칼라 요새(4세기~) 아래 위치. 레게비 강(Leghvtakhevi) 폭포 인근 산책로.
🇰🇷 그 당시 대한민국온천 물이 도시를 만들었듯, 복음의 생수가 영적 공동체를 만듭니다. 예수님이 사마리아 여인에게 말씀하신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요 4:14)의 상징을 트빌리시 온천에서 묵상합니다.


나리칼라(Narikala) 요새는 동서 문명의 교차점인 코카서스에 위치해, 페르시아·아랍·몽골·오스만·러시아 등 수많은 제국의 지배를 받으며 실크로드 무역로의 핵심 전략 거점이었습니다. 조지아가 대제국들 사이에서 독립과 기독교 신앙을 지켜낸 역사의 살아있는 증거입니다.
🏛️ 역사적 배경4세기 바라즈-바쿠르 왕(재위 364년경) 시기 최초 축조. 7세기 우마이야드 아랍 왕조의 대규모 확장, 11-12세기 다비드 4세(건설왕) 재정비, 13세기 몽골 침공 시 나린 칼라(작은 요새) 명칭 유래, 16-17세기 사파비 왕조에 의해 현재 성벽 구조 형성. 1827년 지진 및 1818년 러시아 군 탄약고 폭발로 일부 손상.
🇰🇷 그 당시 대한민국요새 내부 성 니콜라우스 교회(St. Nicholas Church)는 13세기에 건립되어, 1818년 러시아 군이 탄약고로 전용 후 폭발로 파괴되었다가 1997년 재건되었습니다. 신앙의 파괴와 부활을 보여주는 교회 —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리라 (마 16:18)의 산 증거입니다.
트빌리시 솔로라키 언덕 능선을 따라 두 개의 성벽(하부 궁정·상부 궁정)으로 구성. 지역 석재와 벽돌로 건축되었으며, 동서양 건축 양식이 혼합된 조지아 중세 건축의 독특한 특징을 보여줍니다. 전략적 방어와 최적의 시야를 위해 설계되었으며, 유황온천(아바노투바니)과 식물원 사이의 가파른 언덕 위에 위치합니다.
13세기 데메트리우스 2세(자기희생왕) 치세에 건립. 1818년 러시아 예르몰로프 장군이 탄약고로 전용, 폭발로 심각 손상. 1966년 고고학 발굴로 유적 재발견, 1997년 원래 기초 위에 재건. 내부에는 성서 장면과 조지아 역사를 묘사한 벽화와 성상(17-19세기~현대)이 장식되어 있습니다.


두바이(아랍에미리트 UAE의 7개 토후국 중 하나)는 1966년 석유 발견 전까지 인구 수만 명 규모(1960년대 약 4~6만 명)의 어촌이었습니다. 2024년 현재 인구 약 370만 명(외국인 약 90%), 1인당 GDP 약 $44,000. 불과 60년 만에 세계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UAE는 아브라함 협정(2020년)으로 이스라엘과 수교하며 중동 평화 외교의 새로운 장을 열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두바이 프레임(높이 150m, 2018년 완공): 구도시(데이라)와 현대 도시(셰이크 자이드 로드)를 하나의 프레임 안에 담는 건축 철학. 알시프(Al Seef) 지구: 두바이 크리크(Creek) 변 전통 아랍 상인 구역 복원 프로젝트.
🇰🇷 그 당시 대한민국이슬람교(세계 약 18억 명)는 아브라함을 공통 조상으로, 예수님을 '예언자(이사)'로 존경하는 아브라함 계열 종교입니다. UAE는 이슬람 국가이나 비교적 종교적 관용 정책을 펼쳐, 두바이에 약 30개 이상의 기독교 교회가 운영 중입니다.
UAE는 이슬람을 국교로 하면서도 걸프 지역 최고 수준의 종교 관용 정책을 시행하고 있습니다. 두바이에는 가톨릭·개신교·정교회·시크교·힌두교 예배당이 공식적으로 운영됩니다. 제벨 알리(Jebel Ali) 지역에는 기독교 전용 예배 단지가 조성되어 있으며, 매주 수만 명의 이주노동자 신자들이 예배에 참여합니다. 2019년 교황 프란치스코의 아부다비 방문은 아라비아 반도에 교황이 방문한 최초의 사례였습니다.
2019년 2월 아부다비에서 교황 프란치스코와 알아즈하르 대이맘 아흐메드 알타이예브가 '인간 형제애에 관한 문서(Document on Human Fraternity)'에 공동 서명했습니다. 이 문서는 종교 간 대화와 공존을 촉구하는 역사적 선언입니다. 이를 기념하여 2023년 아부다비에 '아브라함 가족의 집(Abrahamic Family House)'이 개관했는데, 모스크·교회·시나고그가 한 단지 안에 공존하는 전 세계 유일의 건축물입니다.
두바이는 1960년대 인구 약 40,000명의 어촌에서 현재 약 360만 명의 국제 도시로 성장했습니다. 60년 만에 이루어진 이 변화는 인류사에서 유례를 찾기 어렵습니다. 코카서스에서 1,700년 된 석조 교회를 보고 온 순례자에게, 60년 만에 세워진 초고층 도시는 깊은 묵상의 대비를 제공합니다.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한일서 2:17) — 영원한 것과 일시적인 것의 차이를 생각하게 합니다.
화려한 두바이에서 조지아·아르메니아의 소박한 수도원을 떠올립니다. 주님, 우리가 이 세상에서 구별된 자로 살게 하옵소서. 이주노동자 90%의 도시 뒤편에 있는 숨겨진 이웃들을 기억하고 기도하는 자가 되게 하옵소서.
— 아멘


두바이 몰(2008년 개장)은 연면적 약 548,000㎡(총 부지 약 112만㎡)로 세계 최대 규모 쇼핑몰 중 하나입니다. 개장 직후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로 두바이가 채무불이행(디폴트) 위기에 처했으나, 아부다비의 250억 달러 긴급 지원으로 위기를 탈출했습니다. 2010년 세계 최고층 빌딩 부르즈 칼리파(828m) 완공과 함께 두바이 분수쇼가 시작되었습니다.
🏛️ 역사적 배경"사람이 온 천하를 얻고도 제 목숨을 잃으면 무엇이 유익하리요" (마 16:26). 두바이의 화려함은 인간 성취의 정점을 보여주지만 동시에 그 허무함을 깨닫게 합니다. 두바이 인구의 90%는 이주노동자들(남아시아·동남아시아·아프리카) — 화려한 도시 뒤편의 그들에게도 복음이 필요합니다.
주님, 10일의 순례를 마치고 일상으로 돌아갑니다. 에치미아진의 1,700년 신앙, 코비랍의 13년 인내, 게르게티의 흔들리지 않는 예배, 보드베의 헌신, 사메바의 부흥 — 이 모든 것이 우리 마음에 씨앗으로 심겼습니다. 대전으로, 한빛교회로 돌아가는 우리를 통해 이 씨앗이 아름답게 자라게 하옵소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겠다 약속하신 주님, 우리의 일상 순례를 인도하옵소서.
— 아멘주님, 세계 최초의 기독교 국가 아르메니아와 성녀 니노의 조지아를 걸으며 1,700년 신앙의 뿌리를 보았습니다. 에치미아진의 빛, 코비랍의 인내, 게르게티의 찬양, 보드베의 헌신이 우리 마음에 깊이 새겨졌습니다. 대전으로, 우리 교회로, 우리 삶의 자리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을 통해 이 신앙의 불꽃이 계속 타오르게 하옵소서. 세상 끝날까지 함께하신다 약속하신 주님께 감사드립니다.
— 아멘